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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아, 아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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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고 있니?
적응은 좀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가족은 별다른 일 없이 지내고 있어.
할머니는 아프신 건 없는데, 요즘 자꾸 살이 빠지셔.
사실, 아빠가 알려준 운동을 하시면 몸속 장기도 활발히 움직이고 건강이 좋아질 텐데, 워낙 운동을 싫어하시거든.
그래서 그런지, 아빠가 오실 때쯤엔 슬쩍 운동하는 척만 하시더라.
그런데 그 운동은 제대로 하면 30분 안에 땀이 비 오듯 나거든.
그런데도 조끼까지 입고 하시니, 아빠가 모를 수가 없지.
말을 하자니 괜히 할머니랑 부딪힐까봐 말도 못하고, 속이 답답하다.
나중에 후회하실까 걱정이야.
누나는 이제 학교를 안 나가.
듣는 과목이 두 개뿐이라 온라인으로도 가능하거든.
그런데 시간여유가 있음에도 그냥 집에만 있어.
무용도 잘하고, 노래도 특기인데 말야.
어쩌다 박스 접기 알바만 하더라.
아빠는 늘 말하지.
꿈은 인생의 방향이고 목표라고.
꿈이 없으면 결국 현실의 감정과 답답함 속에 갇히고,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주변 사람들과는 격차만 커져 있지.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 없냐”는 말도 물론 이해돼.
그런 세상이 오면 좋겠지만, 현실은 하고 싶은 것보다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들이 훨씬 많거든.
그 의무들을 소홀히 하면 하고 싶은 것조차 못 하게 되는 거고.
아빠는 그런 의미에서 지금도 꿈을 잃지 않고 살고 있어.
수련도 30년째, 연기 교육도 15년 넘게 하고 있고, 글도 계속 쓰고 있고.
돈이 되든 안 되든, 꿈이 있어야 삶이 의미 있다고 믿기 때문이야.
그런데 참 이상해.
왜 너나 누나는 꿈을 꾸지 않을까?
아니면 꿈이 있어도 왜 그걸 향한 노력을 안 하게 된 걸까?
아빠는 아빠 나름대로 너희에게 본을 보이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해.
혹시 나이 차 때문이라고, 요즘 애들은 다 이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빠 모임에는 중·고등생/대학생도 많아.
다들 꿈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어.
너는 요즘 꿈이 생겼니?
아빠가 면회 갈 때마다 얘기했잖아.
"꿈을 가져라"라고.
혹시 있다면 꼭 말해줘.
그 분야 책을 사주든, 자격증 공부를 도와주든 아빠가 힘껏 도울게.
넌 원래 암기도 잘했고, 이해력도 빠르고, 계산도 참 잘했잖아.
그동안 공부를 안 한 건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마음이 너무 복잡해서였던 거야.
넌 정말 할 수 있어.
아빠는 널 믿어.
그리고 요즘 아빠 모임에 성인 ADHD나 우울증을 겪는 분들도 오셔.
너랑 너무 비슷한 증세들이 많더라.
감정 조절이 안 되고, 집중 못 하고, 자꾸 다른 데 신경 쓰이고,
주변 정리를 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정리 못하고 쓰레기를 쌓아 놓는 것까지도.
그런데 이분들이 병원에서 치료받고 나서는 너무 좋아졌대.
“새로운 세상을 사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기분이 좋아지고, 세상도 긍정적으로 보이고.
혹시 그곳에서도 치료받을 수 있다면 꼭 한번 받아봤으면 좋겠다.
엄마가 이번 달에 갈 예정이야.
아빠는 안 가고 엄마 혼자 다녀오시게 했어.
그래서 너한테 글로 이렇게 전해.
<중요>
공부에 필요한 게 있다면 꼭 얘기해줘.
바로 사서 보내줄게.
그리고 지난번에 보낸 택배,
옷이랑 슬리퍼, 속옷, 화장품은 잘 받았는지도 궁금하구나.
잘 지내고, 꼭 연락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