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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다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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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다.
잘 지내지?
효광원에 전화 통화를 했는데
너한테 민생지원금이 있다고 들었어.
일정 기간까지 쓰지 않으면 없어진다며.
그 카드는 대전에서만 써야 된데.
사실 아빠는 그깟 거 소멸되도 상관없어.
근데 네가 아쉬워 할 거 같더라고.
그래서 아빠가 내려가 대전 시내에서 네가 입을 옷이랑 책이랑 사서 집으로 갖다놔야 겠다고 생각했어.
아무래도 무게가 많이 나갈 거 같아서 엄마보다 아빠가 가야 될 거 같았어.
원래대로라면 어제 수요일에 가려고 했었어.
이 얘길 할머니한테 말씀드렸더니 엄마가 먼저 예약을 했더라고.
25일인가?
한달에 한번만 면회가 되잖아.
그래서 포기하기로 했어.
그리고 11월까지 사용 가능하다며?
네가 착실히 생활했으면 10월에 나오니까 직접 필요한 거 살 수 있으니까.
근데 나오자마자 대전가서 사야 해.
만약에 효광원에서 바로 나오는 게 아니라 수원까지 가서 풀려나는 거라면?
다시 시간 잡아서 대전까지 내려가야 해.
네 카드를 쓰려면 말야.
이러면 너무 번거롭잖아.
대영아, 잘 생각해보자.
만약 효광원에서 풀려나는 게 아니라 수원까지 가서 풀려나는 거라면,
엄마한테 주고 사라고 하는 게 낫지 않겠니?
혹시나 해서 이돈을 딴 곳에 쓰면 안 된다고 했더니
그 돈을 왜 쓰냐고 펄쩍뛰더라.
걱정하지 말고 엄마에게 주고 사달라고 해.
네가 수원까지 갔다가 다시 대전까지 가면
왕복 8~10시간 걸리고,
차비와 밥값으로 7만원 이상 들지 않을까?
이렇게 나가는 비용은 너한테 손해잖아.
네가 초등학교 4학년때까지 정말 똑똑했는데.
아빠가 이런 얘기하면, 뭐가 이득이고, 뭐가 손해인지, 금방 답을 찾았거든.
그 이후에는 반항심이 커져 너에게 도움이 되는 얘길해도 넌 듣지 않으려고 했어.
그래서 이정도 계산이 되는지 잘 모르겠네.
할머니가 너 많이 보고 싶어 해.
그런데 병이 있다보니 먼 거리는 가기가 힘든 상황이야.
요즘 우리집을 보면서 큰 문제를 느껴.
가족의 의미에 대해 모른다는 거야.
가족은 유일안 내 편이야.
가족을 가슴아프게 하는 건 나 자신에게 고통으로 오게 돼.
가족이 힘들어지면 내 생활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고.
이정도는 알지?
할머니는 일을 못하고, 오히려 병원비로 나가야 해.
엄마도 장사가 너무 힘들어져 겨우 유지하고 있고.
아빠는 계속 일은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전체가 힘든 상황에서 크게 나아지지가 않네.
오해는 하지마!
너보고 고민하라는 게 아니야.
이렇게 가족이 힘들면 너에게도 영향이 간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거야.
그만큼 가족일은 내 자신의 일이야.
네 곁에 끝까지 남아 있는 게 가족이야.
소중함을 알아야 해.
돈이 중요한 게 아니야.
아빠는 네가 돈을 벌 때만 널 응원하지 않아.
네가 실패를 하고 바닥에서 다시 도전한다해도 아빠는 널 응원해.
그 자체로가 너에게 의미가 있으니까.
너도 아빠를 응원해줬으면 좋겠다.
아빠가 계속 실패해도 그 도전에 의미가 있다면 말야.
그게 가족이거든.
가족은 희생을 강요하는 게 아니야.
서로가 의지할 수 있고
각자의 삶을 응원하는 게 진짜 가족이야.
친구도 마찬가지야.
대영이의 삶을 걱정해 주는 게 진짜 친구야.
너를 나쁜 길로 유도하고 삶을 나쁘게 만드는 건 친구가 아니야.
만약 네가 그랬다면 넌 걔네들에게 친구가 아닌 거야.
아빠가 말한 진짜 가족에 대해 이해하겠니?
진짜 친구에 대해서는?
이제는 알 나이어야 해.
우린 진짜 가족이 되야 해.
네 일은 아빠 일이야.
아빠 일도 네 일이고.
그래서 아빠는 네 일을 도울 거야.
금전적으로 힘들지만 다른 방식으로라도 도울 거야.
너도 아빠 도와줘.
누나도 도와줘.
할머니도.
아빠한테 도수치료 배워서 할머니 암도 줄어들게 만들어 주고.
아빠 운동이랑 예술활동 홍보도 해주고.
어때?
네가 놀은 결과가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잖아.
반대로 살아 보자는 거지.
그럼 너의 외로움이나 결핍들도 채워질 거야.
편지 받을 때마다 골치 아프지?
이게 아빠 성향인 걸 어쩌니?
마음만으로 됐잖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연기까지 바라는 건 너무 과도한 거야.
그래서 상대의 방식을 보지말고 상대의 마음을 봐야 하는 거야.
네가 외로웠던 거는 사실 네가 아빠의 마음을, 엄마의 마음을, 할머니의 마음을 보지 못 했기 때문이야.
겉으로 보여지는 것만 보다보니 널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
아빠는 항상 기다린다.
너의 꿈이 생기기를.
너의 인생의 길을 찾기를.
그럼 아빠는 함께 달릴거야.
정 못 찾겠으면 아빠 운동이라도 함께 하자.
쓰다보니 얘기가 길었네.
암튼 엄마 잘 만나고
엄마한테 카트줘서 너 필요한 거 사게 하는 게 너에게 이득이라는 거 알아두고.
그럼 건강히 잘 자내길 바란다.